강화도 여행
ㅡ손돌과 밴댕이를 기억하며ㅡ
1
왕조 시대 민초들의 목숨은 가벼웠다.
가난과 낮은 신분은 천역賤役뿐이어서 임금이나 벼슬아치들에게 그들의 목숨은 언제나 하찮았다.
때론 목숨 바쳐 하늘 같은 그들의 목숨을 보호하려 했어도 그들의 의심에 걸려들면 거꾸로 내 목숨이 버려져야 했다.
자신의 진심 따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강화도에 가면 '손돌 추위' 혹은 '손돌풍'이라는 게 있다.
음력 10월 20일 경 소설小雪 무렵의 추위를 이르는 말이다.
양력으로는 11월 하순 무렵일 것이다.
절기상 첫 추위가 올 무렵이라 이상할 게 없는 추위다.
다만 그 추위에 '손돌'이라고 하는 사람의 이름이 붙었음이 색다를 따름이다.
손돌?
이름자로 보아 지체가 높았을 리 없다.
이름자엔 그 이름을 지은 이, 이를테면 부모나 가족의 소망이 담겨있는 법인데
저 이름에 소망이 담겨 있다고 보긴 어렵다.
가난과 고생을 옆구리에 끼고 살 팔자임이 틀림없는 이름이다.
그랬다.
찾아보니 고려 시대 몽골군이 침략했을 때 임금이 수도 개경을 버리고 이곳 강화도로 파천할 때부터 그의 이름이 거론 된다.
또 다른 경우는 조선 인조 임금 시대이다.
그러나 역사에 조금만 상식이 있어도 저 이야기는 앞뒤가 맞지 않음을 알 수있다.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한 건 1627년 음 12월 경이다.
그런면에선 고려 시대도 맞지 않는다.
고려 고종이 몽골군을 피해 강화도로 피난한 시기가 1232년 음 7월인데 손돌풍이 부는 시기와는 더 안맞는다.
따라서 사실여부를 따지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냥 전설같은 이야기를 그대로 믿기로 하자.(이 글에서는 그 중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것을 인용한다)
전설속에 전해오는 손돌의 이야기는 비극적이다.
2
당시 강화도로 들기 위한 가장 빠른 길은 지금의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에서 배를 타고 눈앞의 건너편 강화군 길상면 덕성리 '용두돈대'에 닿는 수로였다고 한다.
염하鹽河가 소용돌이 치는, 험난한 강을 건너면 쫓기는 목숨이 그나마 앞날이 보장되지만 건너지 못하면 바람앞에 등불처럼 산목숨을 장담하기 어려워진다.
쫓기던 임금은 급히 저 물살 센 염하를 건널 사공을 찾았고 그렇게 찾은 사공의 이름이 손돌이었다.
문제는 소설 무렵의 초겨울이었고 당연히 바람은 차가웠다.
안그래도 거센 물살이 서해의 매운 바람을 업고 더 거셌다.
특히 거리상 가까운 손돌목의 물길은 거세기로 유명했다.
배는 보잘것없이 작았을 것이고, 쫓기는 임금의 행색은 남루해서 추위가 더 몸속으로 깊이 파고들었을 것이다.
거기에 누가 적인지 아군인지 피아조차 구분이 어려웠을 것이다.
이미 권력은 군부에 넘어간지 오래여서 허울뿐인 임금이었다.
당시 몽골의 기세는 욱일승천, 세계를 정복 중이었다. 몽골군의 기마병은 보이는 모든 것들을 제압중이었다. 그 기세가 고려에 뻗쳤다.
세상엔 언제나 그 기세에 빌붙어 앞날을 보장받으려는 세력이 있는 법.
멸망으로 치닫는 고려조정에는 사방에 허방같은 정탐꾼과 암살자가 숨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임금을 한방에 보내기에 이만한 장소가 없었을 터.
임금의 불안과 의심은 배가 물살 센 곳을 향해 들어가자 더 깊어졌을 것이다.
마침내 임금의 의심과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러 더이상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자 임금은 수하를 시켜 사공의 목을 베게 했다.
(손돌의 가슴아픈 전설이 담겨있는 강화도 손돌목 염하. 물살이 매우 거세다. 보이는 성이 용두돈대이고 건너편이 김포 대곶면이다.)
권력 암투는 개경의 높은 궁에 살던 그들의 정치였고
사공은 저 물살 거센 곳이 그저 자신의 밥벌이 터여서
저곳을 지나지 않고는 어떤 경우에도 강 저쪽에 닿을 수 없음을 알기에
불안을 끌어안고 건너야 했을 것이나
그 어떤 진실도 임금의 의심을 넘어서지 못했다.
임금의 목숨을 지켜야 함이 자신의 목숨이 유지되는 일이기에 그저 최선을 다해 노를 저었을 것이나
천한 목숨이 가난을 옆구리에 끼고살듯, 숱한 의심을 옆구리에 끼고 사는 임금과 그 수하들은 도하渡河하는 사공을 마침내 죽이고야 만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임금은 자신의 목숨보다 중한 것은 없었다.
이 천역의 사공 손돌은 숙명인양 죽음을 받아들여, 바가지 하나를 물에 띄우곤 저 바가지를 따라가라 유언처럼 남긴다.
막상 죽이고 나자 선택의 여지없는 임금은 바가지까지 의심할 수는 없어
손돌의 모가지를 대신한 바가지를 따라가 마침내 강 저쪽에 다다른다.
임금에겐 그곳이 피안이었을 것이다.
피안에 이르기 위해 무고한 목숨 하나 물에 바쳤으니 임금도 양심에 가책을 느꼈을 터.
그제서야 임금은 자신의 말을 목 베어 손돌의 영혼을 위로하고 제사 지내게 한다.
민초들은 임금의 어리석음을 대놓고 탓할 수 없어 그맘때 쯤이면 으례히 부는 바람에 손돌의 이름을 붙여 '손돌풍孫乭風'이라 부르고 그의 억울한 영혼을 위로했다.
아울러 저 죽음이 언제 자신에게 다가올지 모르는 불안을 손돌을 기억하며 체념하거나 위안을 삼았을지도 모른다.
언제고 치자治者의 의구심이 한계를 넘으면 저바람이 손돌풍에서 김돌풍, 이돌풍, 박돌풍....이 될 수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강화도에 지천인 밴댕이처럼,
흔해서 천하고 천해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목숨들.
그것도 나룻가를 터전 삼은 천하디 천한 목숨들.
밴댕이 같은 목숨들.
그들이 자신의 숙명인양 이름 붙인 바람.
그것이 '손돌풍'일 것이다.
3
몇년 전 겨울 강화도에 처음갔을 때, 강화 바닷 바람은 매서워서 옷섶을 단단히 여며야 했다.
손돌풍이 이런 바람이겠구나.
어찌어찌 찾아간 광성보 용두돈대에서 제대로 맞아보는 세찬 서해풍이었다.
이곳에서 손돌의 비극적 죽음에 얽힌 안내판을 읽고는 그동안 전혀 몰랐던 한 가난한 민초의 삶에 잠시 숙연해졌다.
이곳에서 강건너 김포 대곶면은 지척.
이 강을 끼고 한평생 살아냈을 '손돌들'의 삶이 해풍만큼이나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삶도 이 바람만큼이나 팍팍했을 것이다.
그 팍팍한 생들이 스스로를 위안하듯 그 바람에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비록 천해서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 땅에 태어나 한목숨 버텨냈노라, 그 버텨냈음을 누군가 손돌처럼 나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염원들이 모여 손돌풍이라 이름 지었을 것이다.
그 염원은 바람을 타고 고려 여기저기 풍문처럼 퍼졌을 것이고 전설처럼 살아남았을 것이다.
(광성보 내 용두돈대 입구에 설치된 손돌에 관한 안내문.)
4
강화도를 갔으면 무엇보다 밴댕이 요리를 먹어야 한다.
강화도에서 밴댕이를 빼고 무엇을 먹을수 있단 말인가.
어디로 갈것인가?
고민끝에 강화풍물시장이었다.
강화풍물시장은 강화 초입에 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강화 특산품이 모두 있다고 했다.
2층 식당가.
그중 왠지 눈에 띄는 이곳, 신선식당엘 들어갔다.
강화도가 처음이듯 이곳 역시 아무 연고 없는 곳.
첫 여행지 첫 식당은 기대반 우려반이다.
이곳에서 그 지역의 첫 맛이 결정된다.
첫 느낌은 언제나 강렬해서 첫 식사가 입에 맞지 않으면 다음 끼니 부터 걱정된다.
그러나 기우였다.
한용운의 시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내 운명의 지침을 바꾸어 놓고',처럼 이 식당에서 처음 만난 밴댕이 정식은 앞으로 내가 강화도를 사랑할수 밖에 없으리란 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예상치 못한 강렬한 맛에 내 온몸의 세포가 활발하게 날뛴다.
새로운 맛에 의한 자극이 온 것이다.
밴댕이회는 실상 5~6월 초여름이 제철인 음식이다.
산란을 하기위해 먼 바다에서 강하구 쪽으로 나온 밴댕이를 자루처럼 길게 생긴 그물을 치고 잡는다고 한다.
강화도가 산란에 최적화 돼 있다고 한다.
초여름 강화도엔 밴댕이가 지천이었으나 지금은 귀한디 귀한 생선이 되었다.
그럼에도 아직은 여타의 생선에 비해 비싸지 않다.
저 뱃사공 손돌처럼 세월이 흘러도 아직도 신분이 귀해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하기에 편안하고 만만하다.
5
밴댕이의 본명은 반지.
그러나 누구도 반지라고 부르지 않는다.
밴댕이가 정식 명칭처럼 굳어졌다.
성질이 급한 것인지 숨이 짧은 체질인지 물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죽어서 뱃사람들도 산 밴댕이를 보기 쉽지 않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밴댕이 소갈딱지' 라는 말이 전해졌겠는가.
다행히 급한 성질을 가진 놈이 산란을 위해 온 몸에 기름기를 가득 품고 있어 씹으면 고소하기 그지없다.
회와 구이, 무침으로 구성된 밴댕이 정식의 첫 순서는 회였다
15 센티미터 정도의 작고 납작한 생선을 기술좋게 포를 떠서 나온 회는 생각보다 비린내도 없고 달짝지근해서 입에 붙었다.
잡내 또한 없어 회가 부담스러운 아내도 거부감없이 먹는다.
거기에 강화도에서만 마실수 있다는 '강화 인삼 막걸리'를 한잔 곁들이자 용두돈대 손돌 찬바람에 헛헛해진 아랫배에서 따뜻한 기운이 일어남을 느낀다.
밑반찬으로 나온 돌게장은 밴댕이 회의 맛을 더해 준다.
강화 바다에서 지천으로 나는 것들의 아름다운 조화다.
돌게 역시 강화도의 흔한 먹거리라고 한다.
이어 구이가 나왔다.
작은 생선이 구울게 있을까 싶은데 용케도 구워나온 노릇노릇한 밴댕이 구이는 뼈째 꼬리부터 씹으니 고소함이 입안 가득 감돈다.
밴댕이가 왜 기름진 생선인지 알겠다.
저 작은 몸에서 어찌 이런 고소함을 낼수 있는건지.
겨우 대여섯마리 나온 구이는 게 눈 감추듯 없어졌다.
아쉽다. 아쉬움에 다시 인삼 막걸리 한잔.
이 막걸리 참 특이하다.
달짝지근한 향에 더해 입안에서 씹히는 잘잘한 인삼 토막이 자꾸 입맛을 다시게 한다.
괜찮을까? 뒷 날 머리 아프지는 않을까? 염려가 일면서도 그 독특한 맛에 자꾸 마시게 된다.
궁합이 맞는다. 궁합이 맞는 것들끼리는 그 맛의 상승 작용이 있어 자꾸 손이 간다.
흔하디 흔한 천덕꾸러기 밴댕이가 지체 높은(?) 인삼과 궁합을 이루었으니 부조화의 조화라고 해야할까?
제 고장에서 난 것들끼리는 저렇듯 알게모르게 통하는 모양이다.
거기에 일박 이일, 시간에 쫓기지 않는 길손의 마음도 여유로워 낯선 여행지에서 처음 맛보는 술이 아니 달 수가 없어 연달아 들이킨다.
평소 술을 잘 못하는 아내도 입에 맞는다면 제법 잘 마신다.
여행이 이래저래 즐거워진다.
이어 마지막으로 나온 정식의 차례는 밴댕이 회무침.
아하, 이 회무침이 이날의 대미를 장식했다. 역시 회무침은 길손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회무침이 안나왔으면 그저 별미로 끝났을 밴댕이 정식은 이 무침 하나로 '날카로운 첫 키스'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됐다.
제 땅에서 난 풋것들과 갖은 양념이 조화를 이루어, 푸짐하니 접시에 쌓아올린 회무침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입보다 눈이 먼저 맛 본 회무침은, 입안에서
눈의 맛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아내와 서로 말없이 한젓가락 떠서 맛나게 씹으면서 우리는 이번 여행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말없이 주고 받는다.
거기에 또 인삼 막걸리 한잔.
그렇게 한동안 회무침과 막걸리의 조화를 탐닉할 뿐이다
6
흔한 것들은 제 이름값보다 큰 재능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귀한 것들은 실상 가진 재능보다 그 가치가 부풀려진 경우가 많아 막상 겪어보면 쓸데없이 이름값만 높아진 게 많다.
바다에서 나는 음식들도 더러는 그렇지 않을까?
이 강화도의 밴댕이나 동해안의 도루묵이나 물곰, 도치(싱퉁이)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 차례로 밴댕이 도루묵 도치)
한때 흔해서 천대 받았으나 막상 귀해지자 이제는 너도나도 다시 찾아 먹는 음식들.
실상 흔할 때도 그것들은 맛이 뛰어나서 제철이면 가난한 서민들의 밥상에 어김없이 올려지곤 했었다.
다만 흔해서 대우 받지 못했을 뿐이다.
탕이면 탕, 조림이면 조림, 구이면 구이, 숙회면 숙회, 어떻게 해도 그 맛이 뒤지지 않는 생선들이었다.
거친 바다와 척박한 전답에 코를 박고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민초들의 삶과 닮은 생선들.
닮아서 정겨우나 자신들의 삶과 같아서 멀리 떼어내고 싶었던 것들은 아니었을까?
흔한 저것들과 다른 삶을 살고 싶어 정겨우면서도 미워했던건 아니었을까?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발버둥쳤던 그 이면엔 저 흔한 것들이 힘의 원천이었음을, 그리하여 저것들로 인해 내 삶이 이만큼이나마 살아졌음을 알고 난 후의 애증과 같은 감정들.
흔한 것들은 그렇게 민초들의 삶과 궤적을 같이 해온게 아닐런지......
7
역사속 숱한 아픔을 겪은 강화도.
그곳에서도 민초들의 고단한 삶의 터전인 풍물시장 허름한 식당에 앉아 밴댕이 정식에 인삼 막걸리를 마시는 일은, 길손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뜻깊은 여행이 되었다.
낯선 곳을 찾는 일은 반복되는 일상의 지겨움을 벗어나는 일이나 벗어나면 비로서 내 일상의 안온함이 보인다.
정기적으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필요한 이유이다.
오뉴월이 제 철인 밴댕이 회.
그러나 제 철을 놓쳤을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서해 찬바람을 맞으며 겨울에도 맛볼수 있으니, 춥다 웅크리지 말고 우선은 길을 나설 일이다.
찬바람 맞으며 저 맛에 빠지는 일은, 꽃피고 새 지저귀는 오뉴월과 또다른 맛이다.
오뉴월은 밴댕이 말고도 사방이 풍요로워서 어디 밴댕이에만 만족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겨울은 다르다.
강화 찬바람에 얼은 몸이 밴댕이 회와 인삼 막걸리 한잔에도 아주 흡족해진다.
겨울에 강화도를 가는 일은 서해 찬바람 만큼이나 아프게 역사속 상처를 돌이켜 보는 일이나
한편으론 오뉴월엔 느낄수없는, 손돌처럼 지천이어서 언제나 그 목숨을 서럽게 버려야 했던 민초들과 닮은 흔하디 흔한 밴댕이의 또다른 맛을 느끼는 일이다.
밴댕이를 먹으면서 아픈 역사를 견뎌낸 저 숱한 민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새삼 돌이켜 보는 일이다.
그리하여 나의 강화도 여행은 이제 겨울이 제 격이 되었다.
우선은 광성보 용두돈대에서 손돌들의 한이 쌓여 불어오는 손돌풍을 온 몸으로 맞아야 한다.
그리고 나서 여건이 허락하면 잎을 모두 떨군 웅장한 활엽 고목들이 묵언수행하듯 숙연히 서있는 천년 고찰 전등사를 한바퀴 돌아보면 금상첨화이겠다.
그 성스러운 기운에 오탁악세에 더렵혀진 내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난 후, 풍물시장 허름한 식당에 앉아 밴댕이 회무침에 인삼 막걸리 한잔을 시원하게 마시는 즐거움.
이 즐거움은 오직 겨울에만 가능한 일이다.
이 즐거움이 수반되지 않는 강화도는 내 여행 목록엔 이제 없다.
강화도는 겨울이 제 격이다.
내겐 불치의 병처럼 굳어졌다.
벌써 가는 겨울이 아쉽고 또다시 올 겨울이 간절해진다.
참고.
강화도 여행은 이미 많이 알려져 인터넷을 치면 명소를 다 알 수 있을 것이다.
밴댕이 회는 강화풍물시장 2층에 가면 여러곳이 있고 선수포구가 예전엔 유명했다고 한다.
내 개인의 취향은 저 곳 신선식당이 제일 맞았다.
지금은 어머니가 그만두고 딸과 아들이 운영하는데 어머니의 손맛을 이어받아 맛이 여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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