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러브 프루스트>
1
고전 읽기는 쉽지 않다.
나는 그렇다.
그럼에도 숙제하듯 고전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가난한 이십대 시절, 늘 책이 고파 단골 서점을 풀방구리 드나들듯 드나들며 형편이 닿는대로 책을 샀다.
더러는 외상으로 사기도 했다.
아니 자주 그랬다.
책방 주인은 아무 보증 요구없이 그냥 외상으로 줬다. 지금은 믿지 않겠지만 정말 그랬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책을 사 날랐다.
그중에 '학원사'에선가 나온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다.
그걸 낱권으로 사 날르자 보기 안쓰러워는지 책방 사장은 어느날 자기가 받는 가격 그대로 줄테니 가져가라 해서 당시 100권짜리 전집을 외상으로 구매했다.
거기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찾아서> 가 있었던거 같기도 한데 읽지는 못했다.
결론은 낱권으로 사 볼 땐 갈급증으로 열심히 읽었는데 백권을 다 사서 들여놓자 질린건지, 아니면 장식용 전집이 자랑스러운건지 잘 안 읽게 됐다.
그렇게 오랜 세월 내 책장을 지키다 어느핸가 재활용장에 버려졌다.
이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책을 다 버렸다. 지금은 무척 아쉽다. 젊은날의 추억이 다 날라간 것같은 서운함.
2
그랬던 고전 제목을 최근 다시 만났다.
화가 황주리 선생의 소설로.
황주리라는 이름만으로도 반가웠다.
이십대 시절 다니던 회사 기숙사에 당시 복지 차원에서 그무렵 나오던 어지간한 월간지는 다 비치해 두었었다.
문학지, 시사잡지, 음악, 미술 등 다양했다.
그 잡지를 나만큼 애용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 어떤 이유인지 비치본이 점차 줄어들었다.
나는 갈증으로 몇몇 책은 정기구독했다.
그중 한권이 문학사상이었고 음악동아였다.
문학사상을 통해 문단의 흐름과 유명문인들의 작품을 만났다면 음악동아와 객석을 통해 클래식에 눈과 귀를 열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도 문학과 클래식이 아주 낯설지는 않다.
내 기억에 그때 젊고 재기발랄한 황주리 화가가 문학사상에 그림과 산문을 연재했었다.(어쩌면 다른 문학지였을수도 있다)
신선했다.그림도 신선했지만 글도 신선했다.
그무렵 글 잘쓰는 화가로는 천경자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젊은 글쟁이 화가와의 만남은 아주 흥미로웠다.
지금보니 그림은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오래전 일이라 글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림은 선명히 기억난다.
그렇게 황주리라는 화가는 내 기억속에 자리했다. 하도 선명해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잊혀지지 않았다.
3
그랬던 그녀도 나이를 먹었다. 어느새 육십 중후반(57년생)이 되었고, 당시 새파란 청춘의 독자였던 나도 육십 초반이 되었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고, 그 세월동안 나는 황주리를 잊었다. 그랬던 그녀를 다시 만난건 페친인 하응백 평론가, 소설가, 출판사 사장의 직함을 갖고있는 유명인사 덕분이었다. 그의 출판사에서 황주리의 소설 <마이 러브 프루스트>를 냈다고 페북에 홍보를 한것이다.
황주리?
내 기억은 단박에 삼사십년전으로 돌아갔고 거기 젊고 재기 발랄한 젊은 여류 화가를 떠올렸다.
다재다능한 그녀가 마침내 소설도 썼구나!
나는 단 1초의 망설임 없이 바로 구매했다.
그리곤 내 청춘의 그시절을 잠깐 소환했다. 활자에 대한 갈급증으로 닥치는 대로 읽어대고 가슴속 표현되지 못한 것들의 답답함에 수시로 폭음을 일삼던, 객기로 가득찬 젊은 날들. 그러나 그시절의 갈급증으로 나는 세상에 대해 조금이나마 눈을 떴고 그 독서의 힘으로 이후 사연 많은 세월을 나름대로 형평을 유지하며 살아낼 수 있었다. 미당 서정주 선생은 "나를 키운건 팔할이 바람"이라고 했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나를 키운건 구할이 독서"였다, 라고 감히 고백한다.
4,
<마이 러브 프루스트>는 프루스트를 좋아하고 그에 관한 인연이 있는 주인공들의 사연이 7개의 연작으로 이어진 단편 소설이다. 얼핏 읽으면 다들 연결 된것 같기도 하고 독립된거 같기도 한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에 익숙한 이들에겐 많이 낯설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일까. 첫편 프롤로그를 읽고 나서는 이건 뭐지? 하고 책을 여러번 펄럭거리며 의아해 했다. 계속해서 다음편 '카페 프루스트' 까지 읽고는 작가 서문과 평론가 하응백의 해설을 꼼꼼이 읽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작가 황주리도 그 고민을 알고 있는 듯 "이 책은 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에 대한 뜬금없는 명상,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좋은, 우리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떠난 여행기이다." 라고 했다.
또한 하응백도 "황주리의 연작소설 <마이 러브 프루스트>는 은유와 상징이 많아 상당히 시적으로 읽히고, 그런 이유로 인해 독자들이 헷갈려서, 이 소설이 가진 미덕을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소설을 읽고 충분히 즐거웠던 분들은 이 해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시간 낭비이기도 하니 이 지점에서 책을 덮기를 권유한다. 소설을 읽고 헷갈리는 분들이나, 이게 뭐지 하고 당황하신 분들이라면 이 해설을 읽어도 좋다." 라고 했다.
아하, 요는 책을 읽고 평하는 평론가에게도 이 소설은 낯설다는 이야기구나. 나는 그제서야 위안을 얻었다. 업이 책을 읽는 이도 낯설은데 내가 낯선거야 당연한 일. 그제서야 나는 즐기듯 읽을 수 있었다. 고백하자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않았기에 주인공의 마음을 공감하기 어려움이 있었슴을 밝힌다. 그럼에도 소설속에 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내용이 충분히 드러나 있어서 별 어려움은 없었다.
5
소설속 주인공들은 평범하지 않다. 그들은 하나 같이 프루스트 애호가들이다. 아니 <잃어버린 시간을찾아서>의 열렬한 애독자들이다.그럼에도 <잃어버린....>을 다 읽지는 못했다.
마르셀 프루스티의 소설 <잃어버린....>은 너무 길어서 대부분 읽다가 중도 포기한다고 한다. 심지어는 작가 황주리도 다 읽지 못한거 같다. 그럼에도 그 제목으로 이미 구십프로는 먹고 들어가 읽지 않아도 무슨 의미인지 다 알 수 있다고 했다. 실은 아직 읽어보지 않은 나는 부랴부랴 인테넷 검색으로 대충 책의 분위기를 파악했고 그 느낌으로 <마이 러브 프루스트>의 소설 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러하니 설사 <잃어버린...>을 안 읽었다고 망설일 필요는 없다. 그저 하나의 장치일 뿐이다. 뭔가 다 이루지 못했거나, 이루기 힘든 것들에 대한 상실감의 위안. 그냥 소설속의 주인공에 동화되서 읽다보면 약간은 몽환적인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들은 한결같이 평범하지 않다. 다들 프루스트에 미쳐 있고, 물려받은 유산으로 먹고사는 걱정에서 해방되어 있다.
그리하여 처음엔 막연하지만 읽다보면 참 매력있는 소설이다. 내 느낌으론 그녀의 환상적인, 혹은 몽환적인 그림들의 해석 같기도 하다.
오래전 처음 그녀의 그림을 만났을때 나는 그렇게 읽었었다.
스토리가 있는듯한 그림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소설속 매 장마다 붙은 화가의 그림도 그렇게 읽혔다.
그림은 일종의 소설에 대한 메타포 같다.
6
너무 오래 횡설수설 했다. 이제 전문가의 의견으로 마무리 하기로 한다. 하응백 평론가의 글이다.
"황주리에게 중요한 건 스토리의 숨 가쁜 전개나 소설 주인공의 눈부신 활약이 아니다. 그런 건 덜 우아한 작가들이 할 일이다. 문학사적으로 말하자면 황주리의 소설은 리얼리즘 독법으로 읽어서는 안된다. 문장 하나, 문단 하나를 두고 홍차를 마시며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음미하듯 천천히 즐겨야 하는 소설이다. 급하게 해야할 것은 고급한 예술이 아니다. 감성적인 예술가는 시간에 쫓기지 않으며 사물의 본질을 탐구한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다. 그는 섬세한 감각으로 상실의 아픔 덩어리에 기억의 촉수를 갖다 대어 세상을 자신만의 시간 질서 속에 편입 시킨다. 그게 프루스트가 소설을 쓴 이유다. <마이 러브 프루스트>를 쓴 황주리도 그렇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역시 하응백이다.
7
그나저나 황주리 선생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데도 여전히 젊고 정열적이다. 그보다 젊은 나는 먹고사는 일에 치여서 그런지 많이 노쇠하다. 억울하다. 나도 소설속 주인공들처럼 어느날 집안 누군가로부터 예정에 없는 유산 상속이 있으면 좋겠다. 그럼 나도 황주리 선생보다 더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가능성 제로다~
농담이다. 소설을 읽다 그들의 삶이 한편으론 부러워 객적은 소릴 한번 해봤다. 나는 충분히 내 삶에 만족하고 충분히 젊게 살고 있다.
황주리 선생의 건필을 기원한다. 다음 작품도 기대한다.
<마이 러브 황주리>. 언젠가, 누군가, 황주리에 감명 받아 이런 제목의 소설을 쓸지도 모르겠다. 그때도 나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책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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